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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물론 기억하고 있다.
그건 분명 계승의 순간이었다.
유전과 증여를 통해 이어지는 부와 명예의 대물림, 선민의식을 통해 더욱 공고해지는 소속감.
그 빛나는 무게 아래서 생존은 부차적인 개념에 불과하다. 사실은 그렇다. 생각해 본 적 있나? 생존은 결국 가장 가시적인 권력의 증거다. 피라미드 위로 향하면 향할수록 발 디딜 곳 적어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그렇다면 제 자리 보전하기 위해서는 옆에 선 것 밀어 떨어트리는 게 당연한 수순일거다.
알고 있나? 인간과 짐승의 차이는 사실 크지 않다. 삶을 이어가는 방식을 놓고 보자면 더더욱.
살아남았기에 강한 것이 아니라, 강한 것만이 살아남는 세계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아, 실로 이해하기 쉬운 언어들의 집합이다…….
L O A D I N G · · · · ·
네! 뮤게, 전부 이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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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본 뮤게, 11세.
속칭 '가든' 또는 '화원' 초등부 소속.
무난한 작명법과는 달리 이본이 성, 뮤게가 이름이다.
타고난 것은 여유고, 능력이고, 재능이다. 그리고 학습한 것은 무리를 꾸리는 방법이고.
교우관계 원만, 성적 우수, 용모 단정!
이름부터 시작해 행실과 그를 보는 타인의 평가까지. 가든 내부에서는 꽃의 이름이 또 다른 이름이 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듯 한 인간들의 작품이다. 무엇을 부정하랴? 이건 이본이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이다. 걸작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겠다. 덕분에 인간성이 다소 부족해지긴 했는데, 아무렴 어떠랴. 이 화원에서 공들여 수년간 재배되다 보면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게 아마 인간성일거다. 결과론적인 해답이긴 한데, 언젠가 사라질 것 이미 제거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아깝지도 않다. 물론 본인의 의사는 일절 반영되지 않았으나, 걱정마라.
한 번도 제 의지 가진 적 없는 피조물은 의지가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 할 거라는 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니까.
[그리고 가끔은 진실과 사실 사이에서 어떤 괴리가 생기곤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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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게, 여러분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정말 기쁘겠는데요?”
이본 뮤게, 11세. 초등부 소속.
어른들 사이에서나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규칙이라든지, 언젠가 제가 해내게 될 거라는 거창하고 난해한 임무 같은 건 잘 모르겠다. 왜 이 곳이 화원으로 불리는지, 어째서 꽃을 꽃인채로 두지 않고 사람을 명명하는 호칭처럼 사용하는지도 자신으로서는 아직 이해하기 어렵다.
실은 무엇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 곳의 무엇도 전혀 와닿지 않는다. 능력과 이해는 별개의 개념. 선악의 개념과 지켜야 할 규칙을 인지하는 게 전부다. 타인이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또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해낼 수 있는지 분명히 이해하고 있지는 않다. 미묘하게 수동적인 태도로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며 시간을 때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본은 이 곳이 마음에 들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또래가 이렇게 모인 곳에서 친구 한 둘쯤은 만들어 갈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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